역사이야기

조선시대 양반 성(性)이야기 -양반 남성의 기녀 (3)

하얀불새 2023. 7. 29. 08:06

 박순은 전주기  준향을 솔휵했다. 그는 1571년 전주에서 준향을  처음 만났다. 실록봉안사로 전주에 내려온 박순은 자신의 수발을 드는 준향에게 한눈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준향을 바로 솔휵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백방으로 노력하여 몇 년 뒤에 뜻을 이루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유희춘은 박순을 가리켜 '몸도 쇠약한 처지에 정력을 낭비한다'며 걱정했다. 

 

 변경에서 수자리를 서던 무과출신자에게도 관기가 방직기로 제공되었다. 부북일기는 17세기에 박계숙  박취문 부자가 변방에서 수자리를 섰던 기록이다. 박계숙은 함경도 회령부와 경성에서, 아들 박취문은 함경도 회령 포을하진에서 수자리를 섰다. 이들은 근무지에서 방직기를 배정받아 숙식을 해결했는데, 이런  방식은 군관이 객지 생활을 유지하는 방편이기도 했다.

 

 방직기는 기녀에서 충원되었지만, 결원이 생겼을 때는 사비로  충당되기도 했다. 이들은 군관에게 매월지급되는 양식을 받아 함께 생활했으며, 방직기의 어미가 이들의 생활을 도왔다. 군관과 방직기 간의 관계가  일정 기간 지속된다는 점에서 방직기는 '현지첩'의 일종이다. 한 사람의  복무 기간이 끝나 떠나버리면 또 다른 사람을 맞이하여 살아가는 것이 변방 관기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도 운우지정이 피어나게  마련이다. 박계숙과 회령 기생 배종은 상당히 친밀한 사이였다. 배종이 박계숙의 방직기는 아니었지만 이들의 관계는 1년 이상 지속되었다. 하지만 박계숙의 수자리 생활이 끝나자 이들의 관계는 해소되었다. 이후 배종은 월매라는 딸을 출산했고, 어린 딸에게 박계숙의 존재를 끊임없이 기억시켰다. 월매는 수천리 밖 변방에서 그 아비 박계숙의 존재를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박계숙과 배종의 인연은 40년 뒤 자식 대로 이어졌다. 배종의 딸 월매는 회령에 새로 배치된 군관이 울산에서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찾아 나섰다. 월매는 이것저것 물어 새로 온 군관 박취문이 그녀가 꿈에 그리던 박계숙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시 배종은 이미 사망한 뒤였고 박계숙은 일흔을 넘긴  나이였다. 월매는 박취문을 만난 날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면서 죽은 어머니를 회상했다. 이후 이들은 박취문이 회령을 떠날 때까지 친근하게 지냇다. 변방의 기생 모녀와 수자리를 섰던 군관 부자의 만남은 변방의 기생 사회에서나 가능했던 기이한 인연이다. 

 

왕실 종친에서부터 문무관에 이르기까지 양반 관직자의 기녀 솔휵은 커다란  사회문제였다. 이는 지방관의 수발을 관기에게 담당케 한 데서 오는 제도적인 문제였다. 국가에선는 솔휵자에 대한 처벌과 관기의 쇄한을 추진했으나, 문제를 근절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