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향복 강간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 향복의 어미인 삼월은 향복을 불러 자세한 내막을 캐물었다. 향복은 자신을 범한 상대가 이문건에게 수학하던 도령 천택이고, 그 도령으로부터 세 차례 걸쳐 강간당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향복을 범한 당사자인 천택은 정작 이로 인해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문건은 그저 천택에게 색을 가까이하면 공부에 지장이 있다고 경계하는 데 그쳤다. 천택이 향복을 범한 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그 때문에 공부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이 앞선 것이다.
양반 사족이 하층 여성의 성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그 뒤에 관노 온석이라는 자가 밤마다 담을 넘어와 향복을 간통했다. 온석과 향복이 통간했다고 해서 그 두 사람을 혼인시키지는 않았다. 이후 향복은 아비가 누구인지 모르는 딸을 출산했다. 그 누구도 향복의 딸을 자식으로 인지하지 않았으며, 결국 아비가 누구인지 모른 채 그 딸은 자식으로 인지하지 않았으며, 결국 아비가 누구인지 모른 채 그 딸은 어미 향복과 함께 이문건의 여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비가 누구인지 밝혀진다 해도 향복의 딸에 대한 소유권은 이문건에게 있었다. 양반가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노비를 소유하고 늘려 나갔던 것이다.
양반 사족에게 여비의 정조는 존중할 가치가 없는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천한 여비는 필요에 따라 존자의 잠자리에 제공되기도 했다. 성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이문건은 같은 성씨인 이민즙이 준비한 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연회가 끝나자 이민즙은 자신의 여비인 강지로 하여금 이문건의 시침을 들게 했다. 유희춘에게도 이런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선조 초년 유희춘이 선대의 묘를 다듬고자 해남으로 귀향하여 좌수 이사겸의 집에 머무를 때였다.
이사겸은 유희춘을 극진히 대접하여 성대한 술자리를 마련하고, 이어 자신의 어린 여비에게 유희춘의 잠자리 시중을 들도록했다. 당시 사람들은 성적 대상을 제공하는 일을 상대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했다.
양반 남성이 여비의 성을 거리낌 없이 농락하는 풍조는 조선시대에 보편화된 사회현상이었다. 이런 인식은 양반 여성과 여비의 성은 엄격히 구별되며 여비의 성은 상대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연유한다. 예는 서인에게까지 내려가지 않고 형은 대부에게까지 올라가자 않는다'는 말도 그러한 인식을 보여준다.
추신: 양반이 하층 여성의 성을 하찮게 여겨지만 노비들도 양반 처자를 능욕하는 경우도 있었다. 양반 처자라고 했어 강제로 범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수가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지 적은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그러한 일이 있다.
출처 :조선의 일상 법정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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