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역사 (6) 썸네일형 리스트형 (음식의 역사) 아메리카노 차가운 겨울날 잘 먹는 음료 중에 하나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다.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은 것이 바로 아메리카노다. 에스프레소가 너무나 써서 마시기 힘드니까 물을 부어 희석시켜 마셨던 커피다. 비유하자면 커피라고는 생전 마셔보지 못했던 옛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새로운 음료가 쓰기만 하고 맛은 없으니까 설탕 쏟아붓고 크림 퍼부어 길쭉한 다방 커피를 마셨던 것과 비슷하다. 아메리카노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때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군 병사들이 현지인들이 주로 마시는 진한 에스프레소가 부담스러워 뜨거운 물을 부어 연하게 희석시켜 마신 것에서 비롯됐다. 찬란했던 문화왕국 로마제국의 후손들 눈으로 봤을 때 커피 맛 하나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것으로 보였으니, 멀리 아메리카 촌구석에서 온 것들이 .. (음식의 역사) 북방 오랑캐 음식이 판치다.5 민족이 얽혔으니 먹는 음식도 서로 섞이는 것이 당연했다. 6세기 무렵 북위의 수도였던 낙양의 정치.지리,풍속 등을 다룬 낙양가람기에는 왕숙이란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의 일화에서도 이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왕숙은 선비족이 세운 나라인 북위에서 대장군을 지낸 인물이지만 원래는 한족 나라인 남제출신이었다. 부모 형제가 남제의 무제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하자 북위에 투항한 후 대장군의 자리를 얻었고, 그 후 여러 차례의 전투에서 전공을 세우면서 '남쪽을 진압했다'는 뜻의 진남장군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왕숙이 처음 북위로 왔을 때 유목민 특유의 북위 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다. 양고기와 양젖을 피한 채 늘 고향에서 먹던 것처럼 잉엇국과 차를 마셨을 뿐이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난 후 왕이 베푼 잔치에서 양고기를 먹고 .. (음식의 역사) 북방 오랑캐 음식이 판치다.4 이어 581년 수나라 문제 양견이 북주의 양위를 받아 제위에 오르고 589년 남조의 마지막 왕조 진나라를 멸망시켜 중국을 재통일하면서 남북조 시대가 끝나고 역사는 수나라로 이어진다. 이렇듯 수많은 나라가 세워지고 망하는 과정에서 전쟁은 필연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북방의 유목민과 중원의 한족, 그리고 남방계 중국인인 묘족이 얽히고설키면서 인종과 문화가 혼합될 수밖에 없었다. 북방은 잠시도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데다 자연재해가 심했기에 서진이 멸망한 이후 북쪽 사람들은 대거 남쪽으로 내려왔다. 남쪽으로 쳐들어온 북방 유목민은 물론이고 전쟁을 피해 먹을거리를 찾아 황허강 주변에 살던 한족인 북인들도 남쪽을 향해 떠났다. 로마 시대 말기 훈족에 쫓긴 게르만족이 연쇄적으로 이동해 로마로 들어와 결국 로마가 멸망한.. (음식의 역사) 북방 오랑캐 음식이 판치다.3 위진남북조 시대는 중국의 혼란기인 동시에 여러 민족의 융합을 통해 중국 문화가 만들어진 시기다. 진나라가 망하는 과정은 고위 관리 장한이 송강의 농어가 먹고 싶다는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화에서 엿볼 수 있다. 이 무렵 진나라 북방에서는 흉노족인 유연이 한나라의 후예를 자처하며 군사를 일으켜 나라를 세웠다. 처음에는 한이라고 했다가 훗날 나라 이름을 조로 바꾸어 오호십육국 역사에서 전조라고 불리게 된 나라다. 유연이 죽은 후 아들 유총이 뒤를 이었는데 311년 진나라의 수도 낙양을 공격해 황제인 회제를 포로로 붙잡아 끌고가 처형했다. 이후 진나라는 지금의 난징인 건강으로 도읍을 옮겨 '동진'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잇게 됐고, 북쪽에서는 전조를 시작으로 다섯 북방 유목민이 세운 열여섯 개 나라가 난립하.. (음식의 역사) 북방 오랑캐 음식이 판치다. 2 수신기를 보충 설명과 함께 읽어보면 그 예언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알 수 있다. 먼저 한족 귀인과 부자들이 '태시'이래 유목민의 식기를 쓰고 그들의 음식을 먹는다고 했는데, 태시는 한 무제 때인 기원전 96년에서 기원전 93년까지 사용했던 연호다. 이때는 서역으로 통하는 교통로, 즉 실크로드가 열리기 시작한 무렵이다. 그러니 이 말에는 서북방 유목민의 음식 문화가 중원으로 물밀듯이 밀려왔다는 의미와 함께 북방 흉노에 대한 중원 사람들의 두려움이 담겨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일부 학자는 남조 때의 송나라 역사책인 송서에 따라 '태시'를 한 무제 때의 연호가 아닌 진 무제 때의 연호 태시로 해석하기도 한다. 진 무제 때의 태시는 265년에서 274년까지 9년 동안 사용한 연호다. 진나라 건국 초기이.. (음식의 역사) 북방 오랑캐 음식이 판치다. 1 "북방 오랑캐 음식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됐다." 4세기 초반 중원의 한족들은 서로 모여 앉으면 이렇게 한탄했다. 한족들이 자기네 전통 음식이 아니라 너도나도 북쪽 유목민의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나라가 망할 징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냐며 했던 말이다. 이는 간보가 쓴 수신기에 나오는 내용인데 336년에 사망한 간보는 진나라가 북방 유목민에게 쫓겨 수도를 지금의 뤄양에서 난징으로 옮겼을 때, 그 명맥을 이은 동진 시대 초기 사람이다. 그가 쓴 수신기는 당시 세상에 떠돌아디니던 소문과 설화 등을 모아서 엮은 책으로, 그 무렵의 시대 상황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록이다. 그중에는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재앙을 미리 알려주는 전조 현상을 모아놓은 부분이 있는데, 북방 오랑캐 음식 이야기는 여기에..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