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는 오와리 서남부현을 지배하는 오다 노부히데의 적자이다. 노부나가는 어릴 적부터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기묘한 행동을 많이 해 사람들은 '멍청이'라 부르며 바보라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부친이 사망한 후 동생 노부유키를 비롯하여 국내의 라이벌을 차례차례 타도하고 오와리 국을 제패해 센고쿠 무장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1560년 스루가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2만5천명의 대군을 이끌고 오와리를 습격하였다. 이때 오다 군은 겨우 3천명에 불과하였으나 노부나가는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였다. 노부나가는 한순간의 틈을 이용하여 요시모토의 목을 베고 이마가와 군을 몰아냈다.
노부나가는 그후 미카와의 마츠다이라 모토야스와 동맹을 맺고 미노 공략에 전념하여 1567년 미노를 평정하였다. 다음해에는 전 쇼군 요시테루의 동생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하여 무로마치 바쿠후를 다시 일으켰다. 이때 그는 이미 '천하포무'라고 새긴 인장을 사용했는데 노부나가가 천하통일을 의식하면서 행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토 입성은 그를 위한 첫걸음이었다.
이어서 에치젠의 아사쿠라씨, 오미의 아사이씨를 멸망시키고 대립하던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추방하였으며 1580년 혼간 켄뇨와 화해하여 10년을 끌었떤 이시야마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1582년 가이의 다케다씨를 정벌하고 사이고쿠의 모리씨를 압박해 일본의 절반 이상을 수중에 넣었다. 그러나 같은 해 교토의 혼노사에서 부하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배반당해 비운의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노부나가의 특징
노부나가는 수입품 신병기를 중시하였다. 문제는 종교정책이다. 자신을 거역하는 종교세력은 철저하게 탄압하였다. 1571년 히에이산의 승방을 모두 불태워비리고 승려 3천명을 살해하였다. 노부나가는 용병으로 군대를 조직해 언제라도 전투를 치를 수 있는 기동력을 지녔다. 마지막으로 쓸모 없으면 중신이라도 가차없이 처분하였다.
'역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사)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 비교론 1 (0) | 2023.09.04 |
---|---|
(일본사)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하통일 (0) | 2023.09.03 |
(일본사)천황제의 성격 (0) | 2023.09.01 |
(음식의 역사) 아메리카노 (1) | 2023.08.29 |
(음식의 역사) 북방 오랑캐 음식이 판치다.5 (0) | 2023.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