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이야기

(일본사)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 비교론 1

 한때 일본  경영자들 사이에서 전술론에 관한 연구가 활기를 띤적이 있었다. 이들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인물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과연 이 셋 중 누가 최고의 인물일까 궁금해 하면서 ,

 

 마찬가지로 태평양 전쟁 때 역사 연구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던 중,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적절한 인물을 뽑는다면 과거 역사에서 누굴 꼽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토론자들은 대체로 전쟁이 종결되면 그 승패 여부에 관계없이 이에야스사 수상적임자른데 의견을 모았다. 노부나가는 정치력보다는 군사적 재능에서 거의 천재적이라는 평과 함께 육군대신에 적합한 인물로 뽑혔고 히데요시는 그나마 상황이 전시라면 수상으로 적절하리라는 박한 점수를 얻었다.  그렇다면 셋 중 이에야스가 최고의 인물이란 말인가?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는 동시대를 산 인물이었으나 생활환경이나 출생에는 차이가 있다. 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미 설정되어 있는 무대에 각기 다른 외모와 성격을 갖고 등장했다. 오와리 평야에서 미카와에 걸친 동해 일단이 무대였는데, 주민들의 생활은 어려웠지만 토양은 매우 비옥한 곳이었다. 

 

노부나가는 오와라 남부의 비교적 좁은 영토를 소유한 소영주였다. 아버지 오다 노부히데가 막부의 한 실력자의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전국 전란의 혼란 속에서도 용케도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 후대 노부나가의 초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년시절의 노부나가는 단정한  외모를 갖춘 미소년이었다. 이 미소년이 때로는 모자란 행동을 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겉만 번드레하고 속은 텅빈 멍청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시대의 흐름을 민감히 파악하고 있었으며 '통일'에 관한 구체적 구상까지도 설계하고 있었다.

 

무장으로서 그는 신경질적인 데다가 목적한 바의 원수를 위해서는 수천 명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잔인한 면이 있다. 후세인들은 노부나가의 잔인한 인간성 때문에 통일 사업을 완수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는 하루도 마음 편히 발 뻗고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속에서 천하를 통일해 가기 위해 사지에라도 과감히 뛰어드는 무인다운 성격을 냉혹하다고 비판할 수 만은 없다. 

 

 오히려 동해 일대의 명가이던 이마카와를 타도할 때 철포라는  신무기를 이용해 보여 준 군사적 지략은 그를 천부적 군인으로 인정받게 할 만큼 뛰어났다. 노부나가가 가신이었떤 미쓰히데의 모함에 빠져 불길에 휩싸인 본능사에서 비참한 결말을 맞은 것은 그가 군사적 재능은 뛰어났지만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정치적 수완은 부족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