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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일본사)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하통일

 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체를 평정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1582년 혼노사에서 노부나가가 살해된 순간 오다 제국은 붕괴하였다. 이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사이고쿠에서 모리씨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사태를 전해듣자마자 히데요시는  주군의 죽음을 비밀에 붙이고 즉각 모리와 화해하고 교토로 돌아갔다.  히데요시는 야마자키에서 아케치 미츠히데를 물리쳐 주군의 원수를 갚았다.  노부나가가 죽은 지 겨우 10일 후의 일이다. 이 신속함이 히데요시를 노부나가의 후계자로 만들었다. 

 

 다음해 오다 가의 숙로 시바타 가츠이에를 시즈가타케에서 물리치고 그 여세를  몰아 시바타 씨의 본거지인 에치젠을 공격하여 시바타 씨를 멸망시켰다. 

 

 히데요시의 일본 통일 과정

 

1582년 야마자키 전투에서 아케치 미츠히데 토벌

1583년 시즈가타켸 전투에서 시바타 가츠이에를 물리침

1584년 고마키 나가쿠테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전투

1585년 근래, 잡하잇키를 평정 간파쿠에 오름 ,죠소가베 모토치카를 복속시켜 시코쿠 평정

 

1586년 조정으로부터 태정대신에 임명되고 도요토미의 성을 받음

1587년 시마즈 씨를 복속시켜 규슈를 평정 선교사 추방령을 발포

1588년 도수령 발포

1590년 오다와라의 호죠씨를 토벌하고 간토를 평정 ,오슈를 복속시키고

 

히데요시의 관대함이 천하통일을 앞당겼다?

 

이처럼 통일이 순조롭게 진행된 또 하나의 이유로 히데요시의 적에 대한 관대함을 들 수 있다. 패배한 적장을 죽이거나 영지를 몰수하지 않고 자신의 부하로 삼았다. 노부나가와는 정반대였다. 따라서 배반당해 통일사업이 좌절되는 일이 없었다. 오다와라의 호죠씨도 당주 우지나오를 살려주고 1만석을 주어 가문을 존속시켰다.

 

히데요시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대망을 품고 소년 시절에 가출하였다. 재주는 있는데 오히려 이 때문에 남들의 질시를 받아 좀처럼 출세할 수 없었다. 이 불행한 남자를 받아들인 이가 노부나가였다. 노부나가는 능력만 있다면 신분에 관계없이 발탁하는 합리주의자였다. 이러한 주군을 만나면서 히데요시의 인생은 호전되었다.

 

재능은 탁월했으나 농민 출신이라 히데요시에게는 권위가 없었다. 히데요시는 조정을 이용하여 도요토미라는 성과 태정대신의 지위, 간파쿠의 직책을 하사받아 지배의 정당성을 획득하려 하였다.